| 열두번째날 > 모슬포에서 무릉까지. 약 21km.
모슬봉. 곶자왈.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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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제 만난 친구와 올레 11코스를 함께 걷는다. 모슬포항에서 시작하는 이 코스는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포의 길이라는 별칭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코스에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으며 곶자왈이라는 외진 곳의 숲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햇볕이 있는 맑은날 둘이 함께 걸어도 다소 스산하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독특한 분위기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사이 게스트하우스는 송악산 바로 옆에 있는데 마을 순환버스를 타지 않고서 모슬포 시내까지 가려면 약 1시간 30분여를 걸어서 나가야 한다. 오늘은 걸어야 할 길이 길어 버스를 타고 코스의 시작점 모슬포항으로 간다.
오늘은 아이폰의 날씨정보에도 바람 이미지가 뜰 정도로 바람이 많은 날이다. 20km 이상을 걸어야 하는 날이라 다소 날씨가 걱정된다. 11코스의 반은 모슬포의 들녘을 걷는 것이다. 바람막이가 없는 들녘을 걷는 것이 쉽지 않다.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숨쉬기도 어렵다. 들녘에서 밭일을 하는 농부들을 스쳐지나간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지어놓은 군사시설 유적. 저런 구조물들이 밭과 밭 사이에 아직도 많이 남겨져 있다.
11코스의 테마는 '제주도의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이다. 제주도의 근대사와 현대사가 녹아 있는 올레다. 4.3 사건 이후 최대의 양민 학살이 자행된 섯알오름 학살터는 사진기를 들이댈 수 없을 만큼 여전히 서늘한 기운을 갖고 있다.
바람이 가는 길을 따라 보리들이 고개를 숙인다.
11코스의 절정 모슬봉 중턱에서 본 단산과 산방산.
바로 아래 묘지들이 보인다.
찰리채플린이 그랬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바람을 헤쳐가며 안간힘을 쓰며 걷던 들녘이 이렇게 뒤돌아 보니 멋진 풍경이었다.
모슬봉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정상의 조선시대 봉수대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정상 언저리에서 다시 내려온다. 내려오는 길이 바로 공동묘지로 연결되어 있다.
공동묘지는 길게 연결되어 있어 한참 묘지들을 좌우로 끼고 걸어야 한다. 묘지 중간중간엔 묘지에 핀 고사리를 뜯는 아주머니들이 있으니 그렇게 무섭진 않다. ^^ 묘지에 피는 고사리가 그렇게 맛이 좋다나... ㅎ
묘지의 끝자락엔 이름없는 때와 장소 등이 적힌 작은 비석들이 빼곡하게 세워져 있다. 무연고지인 분들의 묘지다. 누군가의 안식처를 관광객의 사진기로 들이대는 것이 죄송스러워 사진은 없다...
바람이 사라지고 밝고 따가운 햇살이 나타났다. 그늘진 곶자왈을 걷기에 최고의 날이다.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을 제주말로 곶자왈이라고 한다. 보온, 보습 효과가 있는 곶자왈은 북쪽 한계 지점에 자라는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남쪽 한계 지점에 자라는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독특한 숲이다. 한겨울에도 푸른 곶자왈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생태계의 허파 역할을 한다.' - 제주올레 가이드북 중 -
덩굴로 뒤엉켜 있는 그늘진 작은 오솔길을 한참 걸어가다 보면 이렇게 갑자기 뻥뚤린 평지가 나온다. 사방이 산으로 둘려쌓인 이 원형의 평지는 햇살이 따가워도 피할 곳이 없다.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하다.
게다가 작은 오솔길만 나있고 그 마저도 간혹 나뭇잎들에 숨겨져 있는 구간이 있다. 올레길 리본을 잘못하면 놓칠 수 있으니 조심해서 걸어야 된다. 하지만 이 곳에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분들도 있으니 약간만 조심하면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길을 잘 찾아가야 한다.
길을 따라 가면서 올레길 표시를 확인하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잘 가꾸어진 산책로도 아니고 거대한 삼나무들이 쭉쭉 들어선 장관인 길도 아니다. 그저 작은 잡목들과 잡초들이 덩쿨져 있는 소박한 길이 곶자왈의 길이다.
오솔길 바닥에 햇볕이 조각조각 흩어져 떨어진다. 소박하면서도 우아한 길을 사각사각 걷는다.
2008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숲길)' 부문에서 공존상(우수상)을 수상한 곳이라고 한다.
곶자왈이 끝난 지점에서도 산길을 한참 걸어 내려오다 보면 이렇게 마을 초입에 커다란 나무가 반겨준다.
11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제주 자연생태문화 체험골'
'폐교를 리모델링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과거 제주인들의 생활상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만든 공간. 제주의 식물, 곤충, 야생조류, 해양 동식물 등 다양한 생물의 생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제주 돌담 쌓기, 장작패기, 농작물 도리깨 타작, 귤 따기 등 제주 조상들의 생활상과 놀이도 시기별로 직접 경험해보도록 해 놓았다.' - 제주올레 가이드북 중-
* 오늘 묵은 곳 : 사이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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