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거래 서비스 기획을 꽤 오래 해왔다.
몇몇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크고 작은,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상거래 서비스를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물건을 파는것이라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비즈니스 영역에서의 서비스들이 대부분 비슷비슷한 서비스 구조와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구현하기 위한 정책과 개발 내역 또한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반복된 작업을 통해 나는 보다 더 빨리 보다 더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시킬 수 있는 노하우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의 기획은 기존의 내가 진행했던 프로젝트들의 업그레이드가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보고 누구는 '내공'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누구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늙은 기획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 두 '누구'의 말도 모두 맞다 인정되면서도 더 경계심이 생기는건 뒤에 있는 '누구'이다.
자칫 시니컬하게 보여질 수 도 있지만 사실 내 기획방식의 문제점은 내가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한 많은 것들을 스킵하거나 중요하게 다루지 않은 분야에 대한 저평가이다.
저평가된 것들은 공교롭게도 나의 관심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의 관심사는 당연히 나의 지식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관심사의 종류에 따라 기획작업에서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거나 소홀히 다뤄지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어떤 패션 디자이너는 데코레이션에 집중하는가 하면 어떤 디자이너는 옷감에 집중하는것처럼 말이다.
나는 나에 의해 소홀히 다뤄지는 부분에 대해서 앞으로도 중요도를 높여 다루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쨌든 나는 나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체계화함으로써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으니까.
문제는 나의 고객이 언제나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그동안 축적해온 나만의 지식 분야와 개성적인 성향과 고정된 진행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고객중엔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맞는 기획자를 보는 눈이 없거나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여 내가 그들에게 필요한 기획자로써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지식의 폭'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 알기가 쉽지 않다.
다만 비슷한 프로젝트를 많이 경험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잘될거라 생각되는 기획자를 고르는것에 그친다.
그렇지만 실제 프로젝트에 돌입하여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점차 고객은 이 기획자의 사상에 의해 모든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터뷰 문항부터 그럴테니까 말이다..
'사상'이 없는 기획자는 가장 경계해야할 것중에 하나이다.
앞서 말한것처럼 커머스에서의 기본적인 서비스 정책 및 프로세스 등이 이미 상당부분 표준화되어 있는 이 시점에서 어느 기획자든 조금만 부지런하면 그런 소스들을 구하여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소스들만 제대로 습득하여도 커머스관련 프로젝트나 서비스 운영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스에만 의존하는 기획자는 자신의 '사상'이 없이 다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오퍼레이터일 뿐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기획자에게 있어 지식은 경험의 자료로써 활용되어야지 그 지식 자체가 쓰여질때부터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떤 기획자와 함께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고객의 부가가치의 정도 및 프로젝트 진행의 효율성이 결정된다고 판단되면 결코 기획자를 단순히 스토리보드를 '그리는' 기능공으로 봐서는 안될 것이다.